꼬꼬무 224회 1975, 그 해 여름 약사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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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4회 ‘1975, 그 해 여름 약사봉에서’ 편에서는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약사봉에서 숨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광복군·사상계·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 그의 삶이 공개된다.

약사봉에서 멈춘 56세 장준하 선생의 시간

장준하 선생의 이름은 독립운동과 언론 활동, 민주화 운동의 시간과 함께 놓인다. 그는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월간지 ‘사상계’를 발행하며 부패 권력에 맞섰던 인물이다. 1950~60년대 지식인의 상징이자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그의 삶은 시대의 어둠을 마주한 기록이기도 하다.

1975년 8월 17일, 56세였던 장준하 선생은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죽음은 등산 중 추락 사고, 단순 실족사로 정리됐다. 그러나 그날 약사봉에 남은 정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질문을 낳았다.

추락사로 보기 어려웠던 현장과 시신의 상태

현장과 시신 상태는 사고 결론을 흔드는 쪽에 가까웠다. 추락했다면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손상과 달리, 장준하 선생의 손과 발은 깨끗했고 옷은 찢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등산복과 등산화에서도 뚜렷한 손상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안경까지 멀쩡했다는 점은 의혹의 중심에 놓인다. 험한 바위산에서 추락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당시 상태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유일한 목격자 김 씨와 바뀐 증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인물은 김 씨였다. 하지만 김 씨의 증언은 시간이 지나며 의문을 남겼고, 그날 약사봉에서 벌어진 일을 다시 따져보게 만드는 핵심 지점이 됐다.

단순 사고로 종결됐던 당시 기록은 현장, 증언, 시신 상태가 맞물리며 다시 흔들린다. 꼬꼬무는 유일한 목격자의 말과 남겨진 기록을 따라가며 장준하 선생의 마지막 시간을 되짚는다.

묘원 연락 뒤 드러난 두개골 함몰 흔적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드러난 단서도 있다. 묘원에서 연락이 온 뒤 이장 과정에서 확인된 유골의 두개골 함몰 흔적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면이 된다.

여러 기사에서는 이 흔적을 두고 단순 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의혹이 현실화됐다고 전한다. 문서와 법의학적 분석, 진상규명 작업까지 더해지며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오래된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답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남는다.

티파니·서경석·한그루가 마주한 충격

이야기를 들은 리스너들의 반응도 무겁다. ‘꼬꼬무’에 처음 출연한 티파니는 장준하 선생의 삶과 결단을 전해 듣고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인다. 최근 결혼 후 첫 출연이라는 점도 그의 몰입을 더 눈길 가게 만든다.

서경석은 유일한 목격자 김 씨의 증언을 듣고 헛웃음이 날 정도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그루 역시 모든 것이 이상하다고 반응하며 믿기 어려운 정황 앞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죽음의 배후를 넘어 남은 화두

‘꼬꼬무’는 장준하 선생의 죽음만 추적하지 않는다. 방송은 그가 왜 부끄러움을 알았던 진짜 어른으로 기억되는지, 후배와 청년들에게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까지 되짚는다.

약사봉에서 벌어진 그날의 진실을 묻는 과정은 결국 장준하 선생이 어떤 삶을 살았고, 왜 그의 죽음이 지금도 다시 이야기되는지로 이어진다.

장준하 선생의 마지막을 둘러싼 의혹은 한 사람의 사망 경위를 넘어, 시대와 권력 앞에서 부끄러움을 알고 살았던 한 어른의 삶과 진상규명이라는 질문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의 진실과 1975년 여름 약사봉에서 벌어진 일은 5월 14일 목요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4회 ‘1975, 그 해 여름 약사봉에서’ 편에서 공개된다.

출처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