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일요일 밤 11시 EBS 1TV에서 방송되는 ‘AI 드라마 – 부활수업’ ‘시녀 연이’ 편은 1650년 청나라로 떠나는 의순공주의 열여섯 시녀 가운데 역사에 이름 한 줄 남지 않은 한 소녀를 AI 디지털 복원으로 되살린다. 왕이나 공주가 아니라 기록 밖으로 밀려난 서민의 삶을 조명하는 ‘조선서민실록’의 두 번째 이야기다.
1650년 4월 청으로 떠나는 새벽

1650년 4월 조선 궁궐의 하인 숙소, 동이 트기 전 열예닐곱 살 남짓한 소녀가 카메라 앞에 앉는다. “연이라고 해요. 작은년이나 어린년이라 부르셔도 좋아요.” 관노비의 딸로 태어난 연이는 병자호란 뒤 청의 요구로 공녀가 된 의순공주를 따라 조선을 떠나야 하는 열여섯 시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직 청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이는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떨리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떠나는 날이 다가왔지만 자신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소녀의 두려움이 카메라 앞 독백으로 이어진다.
‘AI 드라마 – 부활수업’은 역사 속 인물이 인생의 결정적인 하루에 카메라를 켰다는 설정으로 영상 메시지를 구현한다. 이번 ‘의순공주의 16번째 시녀’ 편에서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소녀가 청으로 떠나기 직전의 새벽을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역사 기록에서 중심 인물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삶을 정면에 놓는다.
프로그램은 앞서 광대 달문처럼 왕과 위인의 곁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을 ‘조선서민실록’으로 불러냈다. 달문이 1764년 귀양길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면, 두 번째 인물인 연이는 1650년 국경 밖으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 새벽을 통해 기록되지 않은 조선 여성의 삶을 들려준다.
이름 없는 열여섯 번째 시녀
배경에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청의 관계가 놓여 있다. 청의 구왕 도르곤이 부인을 잃고 조선 왕실에 혼인을 요구하자 조정은 이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의순공주가 청으로 가게 됐고, 연이는 그를 수행할 시녀 열여섯 가운데 한 명으로 설정된다.
의순공주로 불린 이애숙은 1650년 열여섯 살에 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공주를 따라간 시녀들의 이름과 이후 삶은 남아 있지 않아, 이번 이야기는 실록에 기록된 중심 사건과 그 주변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빈칸을 함께 바라본다.
연이는 카메라 앞에서 궁녀를 관청의 하전에서 뽑고 양가의 딸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당시 제도 속에서 자신 같은 관노비의 딸들이 수행 인력으로 끌려온 사연을 전한다. 한 사람의 출발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신분과 국가 간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을 소녀의 눈높이에서 풀어내는 대목이다.
몸져누운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도 연이를 붙잡는다. 서대문 밖 배웅 인파 속에 어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지만, 이역만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목숨을 부지하는 것뿐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먼 길이나 낯선 나라만이 아니다. 공주가 청의 왕에게 흡족하지 못하거나 그 왕이 죽어 다른 곳으로 넘겨질 경우 시녀들도 세간붙이처럼 함께 움직여야 하고, 공주가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온다 해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376년 전 사라진 시녀들의 운명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갖지 않을 테니까요”라는 말은 이번 편이 붙잡는 핵심 질문이다. 사람보다 재산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받던 시대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소녀들이 어떤 마음으로 국경을 넘었는지, 기록이 말해주지 않는 자리를 한 인물의 고백으로 바라본다.
역사는 의순공주가 1656년 조선으로 돌아온 사실을 남겼지만 그와 함께 떠난 열여섯 시녀의 행방은 전하지 않는다. 의순공주의 귀환이라는 중심 사건이 기록된 뒤에도 시녀들의 이름과 삶은 빈칸으로 남았고, 제작진은 바로 그 빈칸에 카메라를 돌린다.
376년이 흐른 지금 연이의 이야기가 던지는 물음도 여기에 있다. 큰 사건을 기록하는 역사에서 누구의 이름이 남고 누구의 삶이 사라졌는지, 그리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람의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마음까지 역사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실록과 논문으로 세운 AI 복원
연이의 대사와 사연은 ‘효종실록’을 비롯한 당대 기록과 정해은의 ‘병자호란의 상흔과 의순공주의 탄생’, 이종묵의 ‘중국 황실로 간 여인을 노래한 궁사(宮詞)’ 등 역사 연구를 토대로 재구성됐다. 공녀 제도와 의순공주를 둘러싼 시대적 맥락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해은 연구자의 학술 자문을 거쳐 점검됐다.
정해은의 연구는 의순공주 이애숙이 1650년 청으로 건너간 배경과 1656년 귀환 과정, 이후 그를 둘러싼 기억을 살핀다. 프로그램은 이러한 기록에 인간 작가의 집필을 더한 뒤 AI 기술로 얼굴과 목소리, 공간을 시청각화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빈칸과 재구성된 서사를 구분한다.
AI가 역사 인물의 말을 임의로 만들어내는 방식도 아니다. 원전 자료를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전문가 고증과 학술 자문을 거친 다음 인간 작가가 대사를 집필하며, AI는 이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제작 도구로 사용된다.
이 제작 원칙은 안중근, 뉴턴, 키르케고르 등 앞선 인물 편에서도 이어져 왔다. 인물의 가장 결정적인 하루를 고르고 남아 있는 원전과 기록을 바탕으로 말을 재구성한 뒤 AI 디지털 복원으로 카메라 앞 영상 메시지처럼 구현하는 구조다.
조선서민실록 두 번째 기록

‘조선서민실록’은 유명한 왕이나 위인을 다시 설명하는 데서 한 걸음 벗어나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기기 어려웠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광대 달문에 이어 선택된 연이는 공주의 행렬 속 숫자로만 남은 열여섯 시녀 가운데 한 사람에게 얼굴과 목소리를 부여한다.
연이가 카메라를 켠 하루는 영웅적인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어머니를 두고 낯선 땅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다. 거대한 외교 관계와 공녀 제도는 소녀의 삶에서 가족과 이별하고 자신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제작진은 “역사는 의순공주가 1656년 조선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지만, 그를 따라간 열여섯 시녀의 행방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름조차 온전히 불리지 못한 채 이역만리로 끌려가면서도 어머니의 옷 한 벌 빨아 드리고 싶어 하던 그 소녀의 마음을 시청자와 함께 마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공주를 따르고, 어미를 두고, 카메라를 켜다”라는 문장은 이번 편이 바라보는 하루를 압축한다. 의순공주의 역사 뒤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시녀를 한 사람의 삶으로 다시 바라보는 순간, 기록에 없는 열여섯 소녀의 빈자리도 함께 드러난다.
연이의 고백은 의순공주가 돌아온 뒤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녀들의 삶을 다시 묻게 만든다. 역사에서 사라진 열여섯 시녀의 시간을 오늘의 시청자는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
의순공주의 귀환 뒤에도 행방이 남지 않은 열여섯 시녀의 빈칸을 한 소녀의 목소리로 되짚는 ‘시녀 연이’ 편은 9월 13일 일요일 밤 11시 EBS 1TV에서 공개된다.
사진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