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을 그리다, 강요배

그 바람을 그리다, 강요배

제주 4·3의 기억을 화폭에 옮겨온 강요배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제주MBC 특집 다큐멘터리 ‘그 바람을 그리다, 강요배’가 10월 8일 밤 9시 방송된다. 역사화에서 출발해 제주의 자연과 시간,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 그려온 강요배의 작업을 대표작과 실제 풍경을 오가며 따라간다.

제주 4·3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긴 강요배

제주 4·3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긴 강요배

강요배는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을 통해 제주 4·3의 역사를 강렬한 이미지로 풀어내며 대중에게 4·3의 기억을 전달해왔다. 민중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에서 활동했던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화폭에 옮겼고,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를 선보이며 오랫동안 말하기 어려웠던 제주의 역사를 회화로 기록했다.

이 작업은 사건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상처, 기억을 장면과 색, 거친 붓질 안에 남기며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이후 제주로 돌아온 강요배는 섬 곳곳의 산과 바다, 들판과 숲을 마주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제주의 자연은 그의 그림에서 아름다운 풍경인 동시에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쌓인 장소가 됐다.

산과 바다를 지나 화폭에 들어온 바람

산과 바다를 지나 화폭에 들어온 바람

제주로 돌아온 뒤 강요배의 시선은 자연으로 넓어졌다. 산과 바다, 나무와 꽃, 파도와 구름을 그리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풍경 안에 스며든 감정과 기억을 함께 담았다. 특히 제주를 끊임없이 통과하는 바람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강요배가 그린 풍경에서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오래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품은 채 섬을 지나가는 시간처럼 표현된다. 최근 작품에서도 제주의 바람은 땅과 바다, 그곳에 남은 기억을 이어주는 요소로 등장하며 강요배가 오랫동안 바라본 제주를 보여준다.

유홍준·현기영이 바라본 강요배의 작품세계

유홍준·현기영이 바라본 강요배의 작품세계

이번 다큐멘터리에서는 강요배의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도 만날 수 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현기영 소설가 등이 출연해 강요배의 그림이 한국 현대미술과 제주 4·3의 기억 속에서 지닌 의미, 그리고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역사와 문학, 미술의 시선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만큼 작품을 보는 방식도 한층 넓어진다. 강요배가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기록한 과정과 이후 자연으로 시선을 확장해온 흐름을 따라가면서 한 작가의 작업이 제주라는 장소와 어떻게 맞닿아왔는지 살펴본다.

4K 화면으로 이어지는 그림과 실제 제주

4K 화면으로 이어지는 그림과 실제 제주

영상미 역시 이번 프로그램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제작진은 강요배의 대표 작품과 더불어 작품의 배경이 된 제주의 풍경을 고화질 4K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림 속 산과 바다, 들판과 숲의 이미지에 실제 제주 풍경을 연결하며 강요배가 바라본 섬의 감각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작가 김어흥, 촬영감독 김기호, 연출 김훈범이 참여한 제작진은 작품만 따로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림이 태어난 장소와 화면을 함께 따라간다. 강요배의 붓질 속에 남은 바람과 빛, 제주의 지형을 실제 풍경과 맞물리게 보여주면서 회화와 영상 사이의 연결을 만든다.

‘풍경의 깊이’에 담긴 생각을 음악으로 풀다

‘풍경의 깊이’에 담긴 생각을 음악으로 풀다

특히 강요배의 에세이 ‘풍경의 깊이’에 담긴 생각과 사유를 음악과 함께 풀어낸 구성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강요배가 오랜 시간 써온 글과 대표 작품을 한데 모아 자연과 역사, 그림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예술 산문집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글을 단순히 소개하기보다 작품과 풍경, 음악을 연결해 작가의 사유를 영상 안으로 옮긴다.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해 제주라는 공간과 그 안에 축적된 시간까지 화폭에 담아온 강요배의 작업은 결국 한 장소를 오래 바라본 화가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제주 4·3의 기억과 섬의 자연,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 한 화면에서 만날 때 강요배가 오랫동안 그려온 제주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작지원을 받아 완성된 ‘그 바람을 그리다, 강요배’는 강요배의 대표작과 실제 제주 풍경을 통해 역사와 기억, 자연이 한 화가의 그림 안에서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를 보여준다. 제주를 기록해온 강요배의 긴 작업을 따라가며 그림 속에 남은 바람과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사진 : 제주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