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스 사할린 진으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정영순이 3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역사와 인권의 목소리를 내며 새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3월 3일 화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되는 KBS1 ‘이웃집 찰스’ 520회에서는 익숙한 세상을 떠나 한국 사회에 굳건히 정착한 사할린 한인 출신 정영순의 가슴 뭉클한 인생 궤적이 공개된다.


1992년 ‘미스 사할린 진’ 정영순,
3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근황은?
199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30~5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2년 5월, 그해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마찬가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스 사할린’ 정영순. 1991년,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미스 사할린’. 그렇게 사할린 한인들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졌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오늘, 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대학 교수이자 시민 활동가로 살아가는 정영순. 그는 왜 한국에서의 삶을 택한 걸까?


‘끝끝내 조선행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집 한구석에서 라디오 붙들던 사할린 한인의 한(恨)
정영순의 뿌리는 1930년대 말, 일제에 의해 사할린 탄광과 벌목장으로 강제 징용된 15만 조선인의 아픔과 닿아 있다. 경북 의성 출신인 그의 할아버지 역시 일제의 강제 징용 대상이었다. 사할린에 끌려간 지 5년 만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조선인들을 실어 갈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일본의 회피와 소련의 방치, 조국의 무관심 속에 잊힌 이들.
집 한구석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혹여나 고향 소식을 들을 길이 있을까, 귀 기울이던 할아버지. 그게 어린 시절 정영순의 기억 속 할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한다. 평생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가 차가운 사할린 땅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 한 많은 그들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할린 한인 중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있다?
그들을 만나러 찾아간 안산의 ‘고향마을’
정영순이 몇 해 전부터 깊이 파고든 분야는 바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
그 발자취를 좇던 중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사할린 한인 중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있다는 것. 영순은 곧장 경기도 안산의 ‘고향마을’로 향한다. 1992년 영주 귀국 이후 사할린 한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그는 독립운동가 정갑이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비극적인 말은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립운동가의 자식’이라는 낙인 때문에 고초를 겪다 강제 징용 끌려간 자식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역사. 게다가 가슴 절절한 노랫말로 유명한 ‘사할린 아리랑’의 작사가 역시 정갑이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데…


“러시아에서 고려인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어요”
사할린 한인 최초 대한고려인협회 회장이 된 정영순
20대, 모스크바 유학 시절 처음 들어본 ‘고려인’의 존재. 외모도, 뿌리도 다르지 않은 그들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 온 후, 사할린 한인과 달리 편견 어린 시선에 아파하는 고려인들의 현실을 보며, 그들을 위한 인식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사할린 한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한고려인협회 회장이 된 정영순. 그는 고려인의 역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대외동포청장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디아스포라의 아픔으로 하나 된 사할린 한인과 고려인. 이 땅을 살아가는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특히 정영순은 대한고려인협회 회장으로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고려인 동포들을 위해 다양한 입법 촉구와 보호 연대 활동을 이끌며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넘어 화합을 도모하는 사할린 한인과 고려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전망이다. 한편, 정영순의 특별한 발자취가 담긴 KBS1 ‘이웃집 찰스’ 520회는 3월 3일 화요일 오후 7시 40분에 방송된다.
사진 : KBS